자폐증 스펙트럼의 시대

: 현대사상과 정신병리

自閉症スペクトラムの時代: 現代思想精神病理

우츠미 타케시(内海健) / 치바 마사야(千葉雅也) / 마츠모토 타쿠야(松本卓也)


  

 * 이 글은  現代思想』 2015년 3월호 '정신병리의 시대'에 수록된 첫 번째 대담을 옮긴 것이다. 이 대담을 옮기면서 다시금 실감한 것은, '영어'나 '불어'를 번역하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말을 할 때, 꼭 필요한 경우를 빼면 절대로 영어나 불어 등을 그대로 얘기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무튼 위 사진의 가운데 인물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기 위해 이 글을 옮긴다. 그리고 세 번째 인물인 마츠모토 타쿠야의 글은 이미 <현대 라캉파의 논점들>이라는 번역으로 소개했으므로 그것도 참고하기 바란다.

現代思想』 2015년 3월호를 전체적으로 볼 때, 들뢰즈(와 가타리)에 기반한 논의가 중심이라는 점도 지적해둔다. 

* 일본에서는 라캉의 '실재계'를 대체로 '현실계'로 옮긴다. 이를 다시 '실재계'로 옮겨적었으나, '현실'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에도 이것이 '실재계'와 연결된 것임을 생각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대체로 바꾸긴 했으나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 또한 '스키조프레니'의 경우 예전에는 '정신분열증', '정신분열증자' 등으로 옮겨졌으나, 요즘에는 '조현병', '조현병 환자' 등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전처럼 이해하는 게 좋겠다. 아무튼 이것도 '스키조프레니'로 그대로 적어뒀다. 그들이 그렇게 발음했기 때문이다. 

  

일자의 향락

마츠모토 : 이번에 저는 사람은 모두 망상한다 : 자크 라캉과 감별진단의 사상(はみな妄想する : ジャック・ラカンと鑑別診断思想(青土社, 2015)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대적인 라캉 연구를 참조하면서, 라캉을 통사적으로 재독해함으로써 라캉을 이른바 프랑스 현대사상속에 다시금 자리매김하는 저작입니다. 이 책을 쓰면서 서서히 실감하며 알게 된 것은, 라캉파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인 자크 알랭 밀러의 라캉 독해, 표준판 라캉을 만드는 공식화 작업이 전기·중기 라캉뿐 아니라 후기 라캉에도 미치며, 하나의 도달점이랄까, 모종의 일단락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일단락은 밀러가 2011년에 한 존재와 일자(l’Étre et l’Un)(별명 : 하나뿐인 일자(L’Un-tout-seul), 하나뿐인 자들(Les-tout-seuls))라는 강의입니다. 이 강의는 70년대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는 후기 라캉의 행보를 지금까지 읽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으려고 시도했습니다. 사후적으로 보면, 이 독해는 밀러가 편집한 [라캉의] 세미나출판의 흐름과도 합치했습니다. 2005년에 13권인 생톰이 출판되고, 2007년에는 18권인 외양이 아닐 수도 있는 담론에 대해(On a discourse that might not be a semblance), 2011년에 19권인 우 피르(Ou Pire)가 출판됐습니다. 그리고 그 집대성인 밀러의 2011년의 강의는 우 피르의 해설이기도 합니다. 제 책이 노린 것은 우선 우 피르에 이르는 라캉 독해를 밀러에 의거하면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그 독해의 성과를 프랑스의 정신병리학의 논의에 떨궈놓고, 더 나아가 들뢰즈=가타리나 데리다와의 대결 등 현대사상의 여러 가지 과제 속에서 전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최근의 밀러 주변 논자들의 논의에는 아무래도 들뢰즈=가타리나 데리다와의 논의와 친근성을 가진 논의가 있는데도 그 누구도 그것을 정색하면서 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존재와 일자에서의 라캉 독해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라캉은 그동안 주로 하이데거 존재론의 영향이 강한 이론가로 불렸지만, 밀러에 따르면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캉은 세미나18, 19권의 논의를 거쳐, 20권인 앙코르에서 성별화의 식(性別化)”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존재론(ontologie)”을 버리고, 파르메니데스=플로티누스적인 일자론(hénologie)”으로 전회했다고 밀러는 주장합니다. 물론 라캉은 71~72년의 우 피르세미나에서 일자론이라는 말을 이미 썼어요. 하지만 세미나 해적판을 편찬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자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거의 모든 해적판이 라캉이 일자론(hénologie)’이라고 말하는 대목을 정확하게 옮겨 적지(transcription) 못했기 때문입니다. 존재론에서 일자론으로의 전회를 중시하는 밀러의 2011년 강의에 의해, 아마 처음으로 후기 라캉의 일자론의 이론적 의의가 끄집어내진 것입니다.

    헌데, 이 일자론은 치바 씨가 너무 움직이지 마라 : 질 들뢰즈와 생성변화의 철학(きすぎてはいけないジル・ドゥルーズと生成変化哲学)(河出書房新社, 2013)에서 다룬 존재론적 파시즘얘기와 유비적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들뢰즈한테는 모든 것이 융합하고 점점 연결되어 하나(일자)가 된다는 논의의 흐름이 있으며, 그것은 특히 네그리=하트화된 들뢰즈에서 현저한데요, 그것은 일자의 파시즘이 되어버릴 위험성을 품고 있다. 그런 접속적 들뢰즈와는 정반대의 들뢰즈 상()을 치바 씨는 절단이라는 키워드로 끄집어낸 것입니다. 다른 한편, 밀러가 후기 라캉의 일자론에서 끄집어낸 일자도 존재론적 파시즘의 일자 밀러는 그것을 융합적 일자(Un fusionnel)’라고 말합니다 가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존재와 일자의 다른 제목이기도 한 “L’Un-tout-seul”, 즉 단 하나뿐이며, 타자와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별개의 형태인 듯한 일자임을 하이데거적인 라캉이 아니라, 파르메니데스=플로티누스적인 라캉 속에서 밀러는 끄집어낸 것입니다.

 

치바 : 일자에 대해 융합적 일자라는 이해가 있다는 것을 한 번 말한 뒤에, 그런 게 아니라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네요.

 

마츠모토 : 그렇죠. 앙코르의 세미나에서도, 맨 처음에 융합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래 일자였다고 간주되는 남자와 여자가 재융합하는 것을 지향하는 안드로귀노스(androgynos)의 신화처럼, 융합적인 것을 지향하는 에로스적 향락을 라캉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라캉은 보편적 융합의 일자와는 상이한 향락으로서, “여성의 향락(<다름>의 향락)”을 끄집어낸다. 이런 의미에서 라캉의 일자론은 여성의 향락의 발견을 경유하여, 보편적 융합의 원리로부터 벗어나는 각각의 개별적인 일자의 향락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앙코르6장과 7장에서, 라캉은 유명한 성별화의 공식을 완성시킵니다. 7, 8장에는 백치[바보]의 향락(jouissance de l’idiot)”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왜 백치인가? 라캉은 남성의 향락이 기본적으로 자위행위(masterbation) 같은 것이며, 자신의 팔루스를 사용해 자위하는 듯한 것이며, 그래서 타자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남성의 향락은 타자와 관계를 갖지 않는 어리석고 못난 향락이라는 의미에서 라캉은 백치의 향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앙코르 8장에서 백치의 향락이라고 말할 경우의 백치라는 말에는 사실 그리스어의 어원인 ίδιώτης가 지닌 기묘한개별적인이라는 두 개의 의미가 있다고 라캉은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후 그는 백치의 향락이 지닌 개별적이라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특이적=단독적(singulier)”이라는 의미를 중시하기 시작합니다. 그 향락이, 융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과는 완전히 상이한, 하나뿐인 각각의 개별적인 형태인 일자의 향락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앙코르성별화의 식이 완성된 후에 라캉이 발견한 것은 그것으로 끝납니다. 앙코르8장 이후의 라캉은 전년도의 우 피르에서 도입된 일자론을 논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후 라캉은, 그 일자의 향락은 자체성애적인 것이며, 거기에 주체의 향락의 특이성=단독성(singulalit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거기에서 분석의 종결의 가능성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생톰의 세미나도 다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임스 조이스는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 예술을 만든 것이라는, 꽤 표층적인 이해가 생톰에 관해 이뤄져왔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신병 같은 증상이 있은 후에 창작을 한 사람이라면 뭐든지 생톰입니다. 그러나 라캉의 주안점은, 사실은 거기에 없는 게 아닐까? 라캉은 생톰을 개강하기 직전에 증상으로서의 조이스(Joyce le symptôme)라는 강연을 했습니다만, 거기에서 라캉은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가 자신의 향락의 특이성을 전면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하다, 보통이라면 분석을 하지 않으면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지만, 조이스는 분석을 하지 않고서도 거기에 도달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체성애적인 향락은 무엇이냐 하면, 라캉은 그것을 신체의 사건이라는 말로 얘기합니다. 신체의 사건이란, 어린이가 자체성애적으로 향락하는 곳에 처음으로 언어가 개입할 때에 주어진 충격 같은 것이며, 거기에서는 시니피앙이 물론 들어오지만, 그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과 분절화되지 않고 하나뿐이며, 게다가 그것은 향락과 일체가 된 일종의 에크리튀르 같은 것이다. 그 에크리튀르의 장소를 정신분석은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를 라캉은 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논의가 2011년까지 프랑스에서 라캉 독해의 모종의 일단락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까 화제에 올린 치바 씨의 책과 닮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바 : , 공통의 규범화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개 별별의 특이성을 어떻게 격려하는가, 부활하는가라는 방향으로 후기 라캉의 임상은 향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들뢰즈-가타리와 거의 같죠. 다만, 거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더라도 어떤 규범화를 작동시키지 않으면 분석을 밀고나가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규범성에 의거하는 기술과 특이성을 장려하는 기술이 어떤 관계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각날 수밖에 없죠. 이것은 나중에 재차 건들고 싶습니다.

    그 전에, 일자론 얘기는 재미있네요. 여기에서 얘기되는 일자성, 혼자서 있는 것의 일자성은 일종의 자위(onanism)를 긍정한다는 의미이죠. 그것도 바로 들뢰즈적 의미에서의 욕망의 특이성을 긍정하는 것으로 통하며, 제 책에서 독신자론으로 제시하고 있는 비전과도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에서는 일자-전체가 융합적 기능을 갖는 것을 경계한 것인데요, 일자에게 다른 의미를 나누고, 분리한 상태, ‘분리성을 가리키는 의미로서 사용하는 것은 있죠.

 

마츠모토 : 너무 움직이지 마라에서, 자기항략(self-enjoyment, 이하 '셀프엔조이먼트'로 옮김)론을 전개하는 곳에서 바로 플로티누스를 인용하고 있고, 전체화 불가능한 단편의 세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도 논합니다만, 꽤 자폐증적인 세계에 가깝다고 느끼며, 후기 라캉이 봤던 특이성의 세계에 겹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밀러의 존재와 일자를 읽은 것은 2012년 혹은 13년인데요, 2013년에 치바 씨의 책이 나왔을 때, 양자의 가까움에 꽤 놀랐습니다.

 

치바 : 저는 밀러를 읽지 않았지만, 뭔가 세계동시적으로 움직이던 해석 경향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폐증 개념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어떤 밸런스로 생각하는가가 오늘날에도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무튼 양보할 수 없는 향락의 장소라는 의미를 자폐라는 말로 형언하고 싶다는 것은 제게도 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의료 전문가가 아니라서, 괴로운 상태가 되는 것도 포함해 자폐증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할 수 없다며 제 자신에게 금지해왔습니다. 그래서 자폐증을 비유로서는 말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사실 이 책을 한창 쓰고 있을 때부터 마츠모토 씨와는 몇 번이나 얘기는 나눴고, 그 속에서 자폐증 개념을 셀프엔조이먼트와 가깝게 하는 고찰은 이미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가 죽치고 앉아 있던 맥락이 마침내 마츠모토 씨의 책에서 전면 전개됐다는 형태가 됐으며, 이것이 이후 어떤 식으로 논의를 파급시키게 될지는 참으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츠미 : 셀프엔조이먼트와도 얽혀 있는 얘기인데요, 자체성애는 브로일러1911년에 스키조프레니를 개념화했을 때, 구스타프 융을 경유하여 프로이트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만일 자체성애를 싱귤라리티(singularité)로 바꿔 읽으면, 스키조프레니의 경우 싱귤라리티(singularité)의 도상에서 초월론적인 것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미지화해서 말하면, 카프카의 법의 문 앞에서같은 것이랄까요. 시골에서 온 남자는 문 앞에 가까스로 도착합니다만, 문지기한테 걸려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거기에 머뭅니다. 마지막에 문지기는 이 문은 너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집니다. 스키조프레니싱귤라리티에 대해 어피니티(affinity, 친화성)를 갖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그것은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치료자는, 이런 싱귤라리티를 관계성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요구됩니다. 기묘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싱귤러(singular)양자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 그것을 할 수 있는가 여부가 치료자로서의 자질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스키조프레니의 경우에는, 아직 초월론적 심급이 기능하고 있으며, 부정신학적 구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은 그 빈 곳에 출현하는 자기장에 홀리고 이끌립니다. 라캉은 그것을 인격신(대타자)에게 말을 걸고 파라노이아에 준한 방향에서 얘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역시 카프카의 문이 이미지로는 가깝습니다. 실재계와 상징계가 떼어내진(decoupling) 양태랄까, 슈미트가 형식적인 법과 그것을 행사하는 힘을 나눠서 얘기하는 것을 흉내 낸다, 그 힘이 충만한 공백지대 같은 것이 개시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치료관계에 있어서의 싱귤라리티는 이런 강한 자기장으로부터, 얼마나 이심적(離心的)인 지점까지 데려오게 되느냐는 것에 관련된 프락시스입니다. 두 사람의 저작을 읽으면서, 자폐증 임상과 스키조프레니 임상을 대비해 보는 관점이 부상하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마츠모토 : 예전에 기무라 빈(木村敏) 씨는 정신분열증이 개별화의 위기에서 발병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어쩌면 혹시 청년기에 다시금 싱귤라리티를 낼 때에 실패하여 발병한다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면, 자폐증에서 왜 싱귤라리티가 정신분열증만큼 위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안전하게 나오게 되는가 하면, 그들은 개별화의 위기가 위기로 되지 않도록, 초월론적인 것과의 마주침을 모종의 방식으로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싱귤라리티를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츠미 : 우리가 일반임상에서 관련된 자폐증 스펙트럼의 사례는, 주로 청년기 이후의 사람들에서, 자타미분화의 상태로부터 개체화가 시작될 무렵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아주 고통스러운 시기에 우리는 관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타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만, 반드시 그것이 초월론적 차원의 것이지는 않습니다.

    밀러는 라캉 독해에서 배제가 최종적으로는 일반화 배제이며, 신경증과 정신병 둘 다가 토템과 터부적인 구도 하에 있다고 했습니다. , “아버지의 이름이 배제되는 것은 정신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양자에 공통적인 구조라는 것입니다. 자폐증 스펙트럼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재에서 돌이켜보면, 이 일반화 배제에 의해 정신병도 신경증도 정형 발달定型発達한 것이라고 말한 게 됩니다.

 

치바 : 일반화 배제를 정형 발달의 표식으로 보는 읽기를 할 수 있다고.

 

우츠미 : 그렇군요. 정형자(定型者)라는 것은, 자신에게 눈뜨기 전에, 타자와 한번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키조프레니에게 찾아온 타자는, “어딘가에서 한번쯤 만난 듯한 타자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혀 만난 적이 없었을 텐데도, 왠지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녀석인 것 같다는 느낌이니까, 전적으로 무관한 타자가 아닌 것입니다.

 

마츠모토 : 그래서 무서움이 있다는 것이죠.

 

우츠미 : 그렇군요. 반면, 자폐증 사람들은 바로 처음에 타자와 만나는 것입니다.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타자에게 마음이라는 것이 있었다니!”라는 식으로 놀라게 됩니다. 레오 카나1943년의 논고에서 자폐증개념을 제시했습니다만, 그때, 똑같은 자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스키조프레니withdrawal인 반면, 자폐증은 aloneness이며, 양자는 철저하게 다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브로이어 식으로 말하면, 스키조프레니는 한 번 구성된 현실로부터 철퇴[뒤로 물러섬]하여 공상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반면 아까 말한 셀프엔조이먼트나 자체성애는 카나가 자폐증 속에서 찾아낸 aloneness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츠모토 : 자체성애라는 곳으로 얘기를 되돌리면, 우츠미 씨가 아까 설명하셨듯이, 자체성애는 원래 정신분열증 개념이 생길 때 문제가 된 개념입니다. 프로이트는 1911년의 슈레버 증례론에서 슈레버의 파라노이아를 논합니다만, 그는 거기서 동시에 스키조프레니를 논합니다. 그는 거기서, 스키조프레니파라노이아보다 더 옛날까지, 즉 자체성애에 가까운 곳까지 퇴행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자폐증과 스키조프레니를 구별할 수 없다. 그러자, 프로이트-라캉파에서는 자폐증을 정신병과 똑같은 것으로 보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라캉파 속에서도 생깁니다. 그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퇴행의 지점에 의해, 라캉파의 말투로 얘기하면 향락의 회귀모드(mode)의 차이에 의해, 스키조프레니와 자폐증을 차이화하려고 했다는 것이 에릭 로랑(Éric Laurent) 등의 논의입니다. 어떻게 차이화하는가 하면, 파라노이아는 향락을 대타자 쪽에서 찾아내기에, 슈레버처럼 대타자(신이나 파울 에밀 플렉지히Paul Emil Flechsig(1847~1929) 교수)가 나를 향락하려고 한다는 망상을 구축한다. 스키조프레니에서는 향락이 자신의 신체에 회귀하기에, 몸 위에 향락이 다양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다른 한편, 자폐증자는 원래 대타자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폐증자에게는 일자의 시니피앙”(S1)만이 도입되고 있지만, 그들은 S1에 연쇄하게 되는 시니피앙(S2)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S2를 거절하는 대신, 자체성애가 새겨진 일자의 시니피앙”(S1)을 줄곧 반복해서 사용하고, 특히 신체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향락한다. 그것은, 신체의 이른바 전체의 향락이 회귀해오는 스키조프레니와는 다른 향락의 방식을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스키조프레니 환자에게는 향락의 신체로의 회귀가 실제로 증상으로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음부를 이리저리 쓰다듬다”, “의미가 불분명한 힘이 몸을 조작하고 있다등의 증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은 어느 정도 섹슈얼한[성적인] 것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무서운 타자성을 띠고 있는 것이지만, 성화(性化)된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자폐증자에게 보이는 향락은, 그것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허그 머신(Hug machine)에는 자폐증자의 향락의 모습이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를 억누르는 기기에 자신이 들어감으로써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화(性化)된 방식에서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통제하는가가 자폐증에서의 일자의 향락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스키조프레니와 자폐증은 둘 다 신체에 있어서 향락하는 체제가 전면에 나오는 병의 용태는 아니지만, 양자의 향락의 체제는 상이하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자체성애의 혁신성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셀프엔조이먼트와도 연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현대 라캉파의 논점들

자크-알랭 밀러의 논의를 중심으로

 

마츠모토 타쿠야(松本卓也)

atプラス19(20142)

 

『atプラス19』 著:周防正行、國分功一郎、大澤真幸、大竹弘二、山崎亮、斎藤環、木村草太、松井茂記、松本卓也、海渡雄一、港千尋、鈴木一誌

* 치바 마사야의 너무 움직이지 마라 질 들뢰즈와 생성변화의 철학(きすぎてはいけないジルゥルーズと生成変化哲学)』를 국역 출판한지 좀 되었으나 반응이 별로 없어서 내심 걱정하고 있다. 치바의 책에 대해 내용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문체는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 아무튼 옮긴이 해제도 붙이지 못한 채 출간된 책이라 내심 걱정을 많이 했고, 그래서 마음의 빚을 털기 위해 2개의 글을 준비했다. 하나는 지금 이 글이다. 뒤에 보면 치바의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다른 하나는 이 글의 필자와 치바 등이 나눈 대담을 번역한 것인데, 이것도 곧 공개할 예정이다. 


1. 들어가며

플라톤(다이몬과 광기)과 아리스토텔레스(천재와 우울)의 시대에도 광기가 철학적 모티프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광기와 인간 사이의 떼어낼 수 없는 관계가 서양사상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은 어쩌면 칸트 이후일 것이다.

가령 칸트의 순수이성비판(1781/1789)에서 지각의 랩소디는 정신의학자가 정신분열증의 환각 내지 자아 장애에 대해 금세기에 이르기까지도 말하고 있는 논의를 확실하게 선취했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인식에 있어서는 근원적 통각에 의해 산출되는 나는 생각한다(Ich denke)”라는 표상이 다른 모든 표상을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은 대체로 생각할 수 없는 것들까지도 표상으로서 난무하게 된다(환각). 혹은 표상이 의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지 않으면, ‘는 그것이 의식하고 있는 여러 가지 표상에 따라서, 몇 가지 다양한 자기를 갖게 된다(자아장애, 인격의 이중화).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의식이 갖는 광기의 가능성을 깨달았다. 이런 의미에서 말년의 칸트가 실용적 견지에서 본 인간학(1798)에서 광기에 흥미를 갖고 이를 분류하려 시도한 것은 일종의 이론적 필연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똑같은 사태는 문학에도 지적할 수 있다. 푸코(1970)에 따르면, 17세기 이후의 유럽에서 행해졌던 광기의 감금이라는 원리적 선택은 이른바 배제된 것의 회귀처럼 19세기 이후의 문학 속에서, 광기의 세계를 갑자기 출현시켰다. 19세기 이후, 광기라는 문제를 빼놓고, 더 이상 사상이나 문학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분수령이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있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가령 칸트가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 근대적 자기의 구조였다고 한다면, 그 구조의 발견은 근대적 자기를 확고한 것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그 자기라는 것이 고장나버릴 수 있다는 것,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그 구조적 필연으로서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들춰낸 것이다.

 

 ç´”粋理性批判

イマニュエルカント, 純粋理性批判, 熊野純彦訳, 作品社, 2012.

 

광기에 대해 사고하는 것이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서양사상의 한 가지 목표(objection)가 됐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은 바로 칸트가 말하는 바의 나는 생각한다를 수반하지 않는 표상의 존재와 그 표상의 복잡한 운동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정교화된 개념이다(“나는 내가 생각하는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라캉의 말은 데카르트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칸트적 의미에서도 읽을 필요가 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증상을 만들고 그로부터 고통과 여러 가지가 뒤섞인 향락을 얻고 있다. 그것이 무의식이다. 프로이트는 그 무의식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콤플렉스)라는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1950년대 라캉의 작업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이 무의식을 일종의 초월론적 시스템으로 체계화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누구나 알다시피, 인간에게서의 (말실수나 증상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언어사용의 메커니즘인 상징계는 <아버지의 이름>(le Nom-du-Père)이라는 특권적 시니피앙에 의해 통제됨으로써 비로소 처음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런 상징계에 지배되는 인간은 신경증자라고 불리며, 이른바 정상인과 이웃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이 시기의 라캉에게 신경증과 정신병은 분명히 감별 진단이 가능한 것인데, 그것은 이 <아버지의 이름>의 유무로 이 둘이 나뉘기 때문이다. , 정신병자에게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배제되고 있다.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상징계를 지닌 그들은, 시니피앙()이 머릿속에서 난무하는 정신 자동증으로 대표되는 지각의 랩소디의 먹잇감이 되며, 배제된 <아버지의 이름>을 둘러싸고 생기는 과정을 따라 망상을 점차 발전시킨다. 이리하여 50년대 라캉의 이론에서는 정신병자만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예외자로 기능할 수 있다고 지목됐다.

그러나 이런 엄격한 이론 확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도 있었다. 들뢰즈=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1972)에서 비판했던 것은, 프로이트처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무의식의 유일하게 가능한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하는 입장 및 라캉처럼 과정을 정신병에서만 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 무의식은 모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지배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인간이 자신의 과정을 살 수 있는 것이며, 신경증·정신병·도착 등 여러 가지 병의 임상적 형태는, ‘과정이 오이디푸스적인 벽에 부딪힌 결과로서 생기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여겨진 것이다. 이렇게 들뢰즈=가타리는 모든 인간이 가진 스키조 과정을 해방하는 것을 사상적, 실천적 목표로 삼았다. 즉 그들은 라캉이 정신병자에게서만 찾아낸 과정오이디푸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을 모든 인간에게서의 가능성으로 재파악한 것이다.

한정된 지면으로는 충분히 검토할 수 없으나, 들뢰즈=가타리 및 이들과 동시대적인 몇몇 사유는 이런 라캉 비판의 모티프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 이에 대해 라캉파는 어떻게 대답할까? 확실히 정면에서 재반론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더라도, 필자가 보기에, 라캉의 사후, 현대 라캉파[각주:1]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론적 작업은 이런 비판에 대해 다소나마 자각적인 듯하다. 아무튼, 이른바 프랑스 현대사상의 반라캉적 모티프와 현대 라캉파의 논의를 비교하는 것은, 이 과거의 사상을 다시금 현대의 것을 삼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그 작업의 단초를 시도하려고 한다.

 

2. 상징계의 쇠퇴와 <아버지>의 복수화

라캉과 들뢰즈=가타리의 대립은, 전자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인간에게 유일한 초월론적 시스템으로 파악한 반면, 후자는 그것을 비판한 것이라는 식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 견해가 유효한 것은 고작 1958년 전반기까지의 라캉 이론일 뿐이다.

현대 라캉파의 지도자 자크 알랭 밀러[각주:2]에 따르면, 상징적 질서(대타자 l’Autre)정상적인 형태로 (,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통제된 형태로) 기능했던 것은 정신분석의 프로이트적 시대뿐이다. 즉 그것은 과거의 것이다. 한편, “정신분석의 라캉적 시대는 오히려 대타자의 부재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그는 말한다. 무슨 말인가? 라캉은 세미나 5무의식의 형성물(1957-58)에서 대타자의 대타자”, 즉 상징계(=대타자)를 근거짓는 다른 대타자가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듬해 세미나 6욕망과 그 해석(1958-59)에서 그는 갑자기 대타자의 대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앞의 말을 뒤집어버린다.

Le Séminaire. Les formations de l'inconscient (1957-1958) (5) Formations of the Unconscious: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Book V pdf(해적판)

 Le Séminaire, livre VI. Le désir et son interprétation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Desire and Its Interpretation 1958-1959 Book Vi pdf(해적판)

이것이 대타자의 대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러분께 말씀 드렸을 때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수많은 시니피앙의 그 어떤 표현의 구체적인 연속을 보증하는 그 어떤 시니피앙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빗금을 그은 A[대타자]라는 용어가 도입되는 것은 여기에서입니다.”[각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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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ャックラカン, 無意識形成物, ジャック=アラン ミレ
木孝次ほか, 岩波書店, 2005

 

 

작년(2013)에 정식으로 출판된 이 세미나 6권의 뒤표지에는 편집자 밀러가 쓴 설명문이 붙어 있다. 다음과 같은 이 문장은 이 시기의 라캉의 입장 변경이 가진 임팩트를 충분하게 나타내줄 것이다.

 

동물이라는 종은 자연의 나침반을 갖고 있으며, 그 나침반은 [각각의 종에] 독자적이다. 인간이라는 종에 있어서 나침반은 복수적이다. 인간에게서 나침반은 시니피앙의 조합, 담론에 속한다. 이런 것이, 해야 할 것을 [인간에게] 알린다. 어떻게 사고하는가, 어떻게 향락하는가, 어떻게 번식하는가를 알리는 것이다. 최근 시대까지, 우리의 나침반은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똑같은 극을 향했다. 그것은 <아버지>라는 극이다. 가부장제는 인류학적인 불변의 것이라고 믿어졌다. 가부장제의 몰락은 신분의 평등, 자본주의의 힘의 증대, 기술의 지배에 의해 가속화됐다. 우리는 <아버지>의 시대의 출구라는 국면에 이르고 있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시대에 있었다. 그는 그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일을 저질렀다. 교회는 그것을 깨닫게 됐다. 라캉은 프로이트에 의해 열린 길을 추종했다. 그러나 그 길은 <아버지>가 하나의 증상이라고 상정하라고 그에게 부과했다.”

 

이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적어도 라캉은 1959년 시점에서, 가부장제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해 지배되는 무의식을 표준적인 모델로서 간주하기를 그만뒀다. 이 논의는 그 후에도 발전된다. <아버지의 이름>1960년대 전반에는 복수형으로 아버지의 이름들(noms-du-père)”로 철자화되며, 1970년대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인간의 심적 구조의 위상학적(topological) 매듭을 연결시키는 복수의 방법 중의 한 가지 종류에 지나지 않게 된다(‘버전이 다른 아버지(père-version)’라는 말년의 라캉의 말장난은 그렇게 읽을 필요가 있다).

현대의 라캉파에서 얘기되는 배제의 일반화”, “부성 은유[=<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만들어지는 은유]는 사회적으로 공유된 망상적 은유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앞서 말한 1959년의 라캉의 논의로부터 발전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대타자가 궁극적으로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보증되지 않는다는 것은, 작금의 정상으로 간주된 대타자도 일반화된 의미에서의 배제를 그 안에 끌어안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 배제로부터 귀결하는 집단적 망상을 살고 있으나, 그것이 망상이라고 불리지 않게 되는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들뢰즈=가타리가 생각한 오이디푸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모티프는 라캉에게도 공유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과도한 단순화는 삼가야 하지만, 현대의 일본에서도 과거에 있었던 종신고용제도와 함께 가능해진 가부장제는 쇠퇴하고, 그것에 동반해 연애나 결혼의 모습은 실로 다양화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더 이상 대문자로 쓸 수 있는 <아버지>는 무효화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사상의 문맥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안할 수 있다. 1998년부터 2003년에 걸쳐, 현대에서의 상징계의 쇠퇴를 주장한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에 대해서, 정신과의사인 사이토 타마키斎藤環상징계가 쇠퇴했다고 한다면, 모두 정신병에 걸려버린다고 반론해 조금 논쟁이 된 적이 있다.[각주:4] 라캉파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현대에서의 상징적 질서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아버지의 기능은 프로이트의 시대에서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쇠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밀러에 따르면, 아버지의 기능의 쇠퇴는 전혀 현대에 한정되는 얘기가 아니고, 문자 그대로 왕의 머리를 잘라버린 프랑스혁명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며, 그 시점부터 이미 아버지는 더 이상 사회적 명성의 보유자로서도, 왕년의 입법자로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각주:5]

    

사이토 다마키의 책들


다만 <아버지>가 더 이상 자명한 존재가 아니게 됐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해방되고, 모든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될 가능성을 갖는다는 유토피아적 세계관과는 거리가 멀다. 라캉이 세미나 생톰에서 말했듯이, “<아버지의 이름>을 이용한다는 조건에서, <아버지의 이름> 없이 끝낼 수 있다”(S23, p.136). <아버지>가 부재하기 때문에, 겉보기(semblent)로서의 아버지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Le Séminaire. Le Sinthome (1975-1976) (23)  The Sinthome: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Book XXIII  pdf

 

3. 보통정신병과 감별진단의 행방

<아버지>의 위상을 둘러싼 이런 이론적 변화와 평행하여, 1998년에 프랑스의 라캉파에서는 보통정신병(psychose ordinaire)”이라는 용어가 제창됐다.[각주:6]

현대의 정신병(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정신분열증이나 협의의 파라노이아에 대부분 상당한다)에는, 옛날의 증례처럼 눈부신 환각이나 망상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정신병 구조를 가지면서도 발병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증례가 많다는 것이 자주 지적됐다. 지금까지 그런 증례에는 하얀 정신병(psychose blanche)”이나 미발병 정신병(psychose non-déclenchée)” 같은 진단명이 붙어졌다. 그런 증례는, 슈레버처럼 뚜렷한 발병(déclenchement)을 나타내거나, 남다른(extraordinaire) 망상을 개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양한 것으로부터 탈접속(débranchement)한다. 이런 증례는, 슈레버처럼 화려한 망상을 개화시키는 정신병(남다른 정신병psychose extraordinaire)과는 달리, <아버지의 이름>의 배제로부터 귀결하는 분명한 정신병의 표식(고전적 요소 현상 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적이라고 한다.

다만 보통 정신병이라는 진단명이 그런 증례에 대해 곧바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 정신병은 오히려 신경증이다라는 확실한 증거가 보이지 않을 때, 숨겨진 정신병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 진단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지는 잠정적인 진단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도 밀러는 말한다. ‘보통 정신병이라는 용어는 발병하는 대신에 탈접속이라는 모드에서 나타나는 현대적인 정신병을, 미세한 특징에 의해 진단 가능케 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 미세한 특징을, 밀러는 다음의 세 가지 외부성의 양태에 의해 예시하고 있다.[각주:7] 

(1) 사회적 외부성 : 루소를 필두로 하여, 정신분열증자의 방랑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자주 관찰되었지만, 이처럼 사회 속에 고정된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다는 외부성을 가리킨다. 현대적인 정신병에서는, 직장이나 가정으로부터 탈접속하다는 특징이 보인다. 반대로, 사회(직장)에 대해 과잉 동일화하는 형식에서의 보통정신병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일자리를 잃는 것을 계기로 발병하는 것도 있다고 밀러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일자리를 갖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이기때문이다.

(2) 신체적 외부성 : 보통 정신병에서는 신체가 자기에 접속되지 않고, 간극을 내포하는 것이 있다. 이 실례는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기술한, 자기의 신체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체험이다. 이런 신체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처 행동으로서, 밀러는 타투를 들고 있다. , 그들에게서 타투는 신체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아버지의 이름>이 된다는 것이다.

(3) 주체적 외부성 : 보통 정신병에서는 독특한 공허감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공허감은 신경증에서도 보일 수 있지만, 보통 정신병의 경우는 그 공허감을 변증법적으로 부정할[변증법적 부정을 할] 수 없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한다.

           

 

밀러에 따르면, 보통 정신병이라고 하는 용어의 도입은, 그 이론적, 임상적 귀결로서 두 가지 방향을 동시에 초래한다.

한편으로는, 보통 정신병이라는 존재를 깨닫게 된 이후, 임상가는 신경증의 진단의 정밀화를 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환각이나 망상이 없다고 해서 신경증이라고는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1950년대의 라캉이 이론적 전제로 삼았던 <아버지의 이름>의 유무에 의한 신경증/정신병의 감별 진단의 원칙이 유지되게 된다.

반대로 다른 한편에서는 정신병의 보편화라는 방향을 얻게 된다. 정신병이 이전 시대처럼 명확한 발병을 나타내지 못하고, 게다가 신경증과 정신병을 나눈다고 간주됐던 <아버지의 이름>의 기능이 쇠퇴하고 있는 이상, 정신병이라는 병리가 희석된 형태로 만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과 호응하듯이, 최후기의 라캉은 사람은 모두 광인이다. 달리 말하면 망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신경증/정신병의 감별진단이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이론도 또한 라캉으로부터 끄집어내지는 것이다. 토마스 스볼로스[각주:8]는 이 두 가지 방향성은 물리학에 있어서의 뉴턴과 아인슈타인 같은 관계에 있으며, 양립 가능하다고 말했다. , 신경증과 정신병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임상과, “사람은 모두 광인(정신병)”이라고 위치짓는 임상이 양립할 수 있다는 절충적인 견해가 나오는 것이다.[각주:9]

* 토마스 스볼로스의 글은 다음 사이트를 클릭. http://www.lacan.com/symptom10a/ordinary-psychosis.html

 

4. 섹슈얼리티의 변화 : ‘노출중독/의존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정신분석 이론에는 수많은 비판이 가해졌다.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함께 되는 것을 욕망한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도식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친 유럽에서 국지적으로만 타당한 것일지도 모르고, 보편성을 갖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는 모계사회인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민족을 연구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여러 논고(애정 생활의 심리학愛情生活心理学, 문화 속의 편치 않음[문명 속의 불만])를 읽으면, 그가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문명과 성에 대한 사회적 제도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문명인이라고 부르는 인간(근대 이후의 유럽인이라고 해석하듯이)에게 있어서는, 유아기의 성욕이 인세스트[근친상간] 금지의 관습에 의해 제한을 얻음으로써 그 완수가 아무런 결실도 없는 채 끝나는 것이 /그녀들의 성애생활을 규정한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그리고 이 욕동의 단념에 의해 얻어지는 결여가 우리에게 다양한 대상을 욕망시키고, 다양한 증상을 만들고, 승화를 통해서 다양한 창조를 행하게 하는 원천이라고 프로이트는 파악했다. , 우리의 섹슈얼리티, 욕망, 증상, 창조는 초시대적인 보편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우리에게 강제하는 결여의, 이른바 함수로서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에 대한 제도나 상황이 변화한다면, 우리의 섹슈얼리티도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확연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그 어떤 제한도 철폐한, 해방된 성의 모습도 결코 좋은 결과를 이끄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는, “[성의] 제도가 바뀌면, 다른, 혹여나 더 중대한 희생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아닌가 여부라는 의구심을 긍정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정신분석에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라캉이 1970년대 전반에 행해진 지적 현대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문명에 있어서, 바로 욕망이나 섹슈얼리티에 있어서의 중대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지적 은 이런 프로이트의 고찰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시기의 라캉은, 이 변화를 담론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밀러가 말하는 정신분석의 프로이트적 시대에서의 주체(근대적 주체)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한 주인의 담론에 의해 구동됐다고 한다면, 신자유주의와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석권하는 현대에서의 주체의 모습은, 더 이상 똑같은 주인의 담론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라캉은 자본주의의 담론을 발명한 것이다[그림1].

라캉의 담론의 도식은 각각 좌우상하의 네 개의 위치를 갖고 있다[그림 2]. 좌측 상단은 동인(agent), 좌측 하단은 진리(vérité), 우측 상단은 타자(autre), 우측 하단은 생산물(production)의 위치이다. 이 네 개의 위치에, 주인의 시니피앙(S1), 지식(S2), 빗금이 그어진 주체(), 대상 a(a)의 네 개 항처럼 배치되느냐에 따라서, 각각의 담론은 규정된다. 기본적인 법칙으로서는, ‘진리에 의해 뒷받침된 동인타자에게 명령하고, 그 결과로서 생산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진리생산물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그림 1: 주인의 담론과 자본주의의 담론

주인의 담론            자본주의의 담론

 

그림 2: 담론의 도식


 

주인의 담론은 시니피앙 연쇄(S1 S2)에 의해 주체()가 대리 표상됨으로써, 원초적으로 있었다고 상정되는 향락을 잃고, 이로부터 잉여향락(a)이 생긴다는 구조를 나타낸다. , 이 담론에서는 결여(상실)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이리하여 주체()와 대상 a 사이에는 판타슴(a)의 구조가 생기고, 주체는 그 판타슴 속에서 결여를 추구하는 욕망을 품게 된다.

자본주의의 담론은 주인의 담론의 좌측(S1/)의 상하를 역전시킨 것이다. 그것에 수반해, 주체()와 대상 a실선으로 묶이게 된다. 이 실선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후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잉여향락은 이제 계산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욕망의 대상을 통해 향락을 얻으려고 시도하지만, 거기서 제공되는 상품은 시장 원리라는 질서를 따르고, 계산 가능성의 논리에 의거한다. 이리하여 현대의 우리는, 대량 소비용의 균질화된 공업 제품을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차례차례 추구하는, 끝나지 않는 소비에 농락당하게 된다. , 일찍이 욕망을 구동한 결여는, 상품에 의해 메워지게 된다. 달리 말하면, 차례차례 새로운 상품이 주체에 적용됨으로써 주체의 욕구나 요구를 일시적인 형태로 곧바로 만족시켜주게 될 때, 욕구의 피안에 나타날 터의 결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라캉은 생트안느 병원에서의 세미나 정신분석가의 지식(1971~72)에서 “자본주의의 담론은 거세를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일찍이 욕망을 구조화한 상실(결여)의 무시 또는 무효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담론에 있어서 상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실 없이 향락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환상이 주체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Le savoir du psychanaliste et. ou pire -Séminaires 1971 -1972 


츠이키 코스케(立木康介)의 최근작 노출하라, 고 현대문명은 말한다(露出せよ, 現代文明)는 바로 이 상실(결여)의 무시 혹은 무효화를 주축으로서 현대문명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츠이키는 어쩌면 우리 인간의 섹슈얼리티라는 것은 퇴화하고 있는 기능이 아닌가? 라는 프로이트의 의심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露出せよ、と現代文明は言う: 「心の闇」の喪失と精神分析

立木康介露出せよ現代文明河出書房新社, 2013. 


욕동의 원천으로부터의 대상의 분리(대상상실)가 적절하게 수행되지 않은 곳에, 과연 섹슈얼리티의 구조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츠이키가 다양한 문화 현상이나 현대예술의 예를 인용하면서 명료하게 제시하듯이, 현대문명은 표상’(거기에 없는 것을, 대리함으로써 표현하는 시도)으로부터 노출’(거기에 있는 것을, 벌거벗은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로 크게 조타를 꺾는다[방향을 바꾼다]. 과거 시대의 멘탈리티가, 그 장소에서 이미 부여되고 있는 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에 중요성을 주고 있다고 한다면, 현대 멘탈리티는 주어진 것을 부정하는 계기를 잃고 있다. 그리고 상실을 더 이상 없는 것이라며, “뭔가가 무엇이든 향락한다를 목표로 하고, 자신이 우회에 의한 그 어떤 손실도 겪지 않고 생각한 그대로 향락하고 있다는 것을 외부를 향해 과시하는 듯한 도착적 표현이 다양한 영역에서 전개되고 있다. 츠이키의 논의는, 라캉이 자본주의의 담론을 이론화함으로써 조명한 현대 문명의 길의 끝에, 지금 현재 보여왔던 것을 노출이라는 키워드로 붙잡는 데 성공했다. 이런 의미에서 노출하라, 고 현대문명은 말한다21세기의 현 시점에서의, 우리의 시대의 문화 속의 편치 않음[문명 속의 불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결여를 기반으로 한 지금까지의 우리의 욕망이나 향락, 섹슈얼리티는, 앞으로 어디로 향할까? 밀러는 2011년 강의 단 하나뿐인 <일자>(l’Un-tout-seul)[각주:10]에서, 현대의 향락의 모습에 대한 대담한 방향전환을 제시했다. 우선 이 강의의 방향성을 요약한 인터뷰에서의 밀러의 발언을 살펴보자.

 

라캉이 결론을 내린 것은, 낡은 모델이 확실하지 않게 되며, 섹슈얼리티가 융합적인 일자’(«Uu» fusionnel)로부터 단 하나뿐인 <일자>(Un-tout-seul)’로 이행한다는 것입니다. 각각에, 자신의 길이 있다! 각각에, 자신이 향락하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라캉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자체애[자기애]라고 불렸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21세기의 일상생활의 일반 모델은 중독(addiction: 의존)입니다. ‘일자는 자신의 마약과 더불어 홀로 향락합니다, 그리고 모든 활동이 마약(drogue)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포츠, 섹스, , 스마트폰, 페이스북.[각주:11] ***

 

인간의 기존의 섹슈얼리티가 남성과 여성의 합일을 목표로 하는 에로스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성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계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성관계의 부재의 시대의 섹슈얼리티는, 하나의 결여를 포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포스트-성관계의 부재라고도 해야 할 섹슈얼리티가 출현하고 있다. 그 모델을, 밀러는 프로이트의 자체애중독”, “마약같은 실로 자극적인 용어로 포착하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기하고 싶은 것이 노출하라, 고 현대문명은 말한다와 거의 동시기에 간행된, 치바 마사야의 너무 움직이지 마라 : 질 들뢰즈와 생성변화의 철학(きすぎてはいけないジル.ドゥルーズと生成変化哲学)이다. 치바의 논의는, 지금까지의 들뢰즈 이해가 마이너리티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일자>로서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접속적 들뢰즈에 치우쳤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접속적 들뢰즈의 대극에 있으면서, 언제나 들뢰즈의 사고 속에 잠재하는 절단적 들뢰즈를 들뢰즈의 텍스트 안에서 끄집어내 보여준다. 치바가 취하는 입장은 이 두 가지 극단적인 들뢰즈 사이를 왕래하며, 그 두 가지 사이의 중간에 머물 것을 제창하는 것이다.

   å‹•ãã™ãŽã¦ã¯ã„けない: ジル・ドゥルーズと生成変化の哲学 (河出文庫)

 

헌데, 치바의 논의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도 또한 셀프 엔조이먼트(자체애)’, ‘중독’, ‘마약이라는 키워드를, 고전적인 구조주의적 라캉(대략 50년대의 라캉 이론에 상당할 것이다)을 극복하기 위한 이론장치로 등용한다는 것이다.

 

그림 3: 프로이트의 심적 장치


들뢰즈에 따르면, 정신분석이 생각하는 심적 시스템은, 욕망이 기억 흔적과 정서의 시스템에 대해 투여[투자]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마 유명한 프로이트의 심적 장치의 모델[그림 3]을 말하는 것이리라. 프로이트의 심적 장치는, 지각 말단에 있어서 외부세계로부터의 자극이 수용되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 자극이 기억흔적으로서 몇 층에 걸쳐 다양하게 처리되고, 최종적으로 운동신경에 이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몇 층에 걸친 기억 흔적의 층의 일부가 무의식이다. 중요한 것은, 외부세계로부터 얻어진 유아기의 만족 체험의 기호가, 기억 흔적(시니피앙)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원초적인 만족 체험 그 자체에는 접근할 수 없으며, 결여(상실)를 안에 끌어안고 있다. 그 대신 이 결여를 추구하는 운동(욕망)이 무의식에 있어서 전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욕망을 무의식에 있어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들뢰즈는 마약에는 욕망이 지각의 시스템을 직접 투자[투여]한다는 특수성이 있다고 한다. , 마약은 기억 흔적에 의해 구성되는 시스템, 즉 시니피앙에 의해 구성되는 프로이트=라캉적 무의식의 층을 단숨에 뛰어넘어, 욕망을 직접적으로 지각으로서 만족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각주:12] 그러니까 들뢰즈는 약물 분석을 정신분석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하는 것이다.

혹은, 치바가 주목하는 의존은 마치 아이가 한눈을 판 끝에 찾아낸 대상에 몰입하는 시야 협착적인 의존이다. 그것은 뛰어나게 비의지적인 것이며, 시니피앙의 연쇄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과성을 비의미적으로 절단한다.[각주:13] 마약에 대한 들뢰즈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기억 흔적(시니피앙)의 층을 통과하지 않는 것에 적극적인 의의를 찾아내는 논의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정신분석의 관점에서는, 실제로 마약에 의해 생기는 사태가 정말로 무의식을 뛰어넘고 있는지 여부, 혹은 들뢰즈가 욕망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신분석에서는 욕동[충동]이나 향락이라고 불리는 것 아닌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더 상세한 논의가 필요해질 것이다. 또한 라캉파의 관점에서는, 치바가 말하는 비의미적 절단이 스키조 키즈처럼 모종의 내키는 대로, [의식이] 흐릿한 형태로 행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절단은, 우리의 신체에 더 이상 떼어낼 수 없는 듯한 형태로 새겨져 있는, 우리 각각의 향락의 고립의 증거는 아닐까? 그러나 결여를 기반으로 하는 섹슈얼리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지평을 파악하기 위해, 현대 라캉파와 들뢰즈파의 양자가 마약’, ‘의존같은 은유를 사용하는 데에는 충분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5. 증상에서 생톰으로

앞 절에서 본 단 하나뿐인 <일자>” 개개인마다 고립된 향락의 방식 에 대한 주목은, 사실상 증상에 대한 논의에서 파생된 것이다. 여기서는 현대 라캉파에 있어서의 증상론을, 증상에서 생톰으로라는 절개면을 통해 개괄해보자.

우선 확인해 두어야 하는 것은, 정신분석에서의 증상은, 증상이 메타포(은유)로서의 성질을 갖는다는 프로이트의 발견에서 유래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의 히스테리 환자가 드러낸 컵으로 물을 못 마신다라는 증상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이 기르던 개에게 컵으로 물을 마시게 했다라는 부정적인 장면을 바꿔버린[치환한] 메타포가 된다. 증상은 지금 거기에 없는 것(싫어하는 인물이 행한 견디기 힘든 행동)을 대리하는 표현이며, 그 증상의 원인이 된 사건을 상징적 표현으로 가공한 것이다. 증상은, 그 증상을 가진 환자 본인도 눈치 채지 못한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려 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증상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면, 그 증상이 소실된다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라캉은 이런 증상의 원리를, 어떤 시니피앙이 다른 시니피앙에 의해 치환되는 메커니즘으로 재파악한 것이다.

이처럼 정신분석에서의 증상론은, 증상이 지닌(시니피앙의 치환에 의해 만들어진다) 메타포로서의 성질을 중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증상을 모조리 다 해석해도 여전히 증상이 소실하지 않는 사례를, 정신분석가들은 여러 차례 만나게 됐다. 증상의 시니피앙으로서의 측면을 침전시키는 것만으로는 증상이 소실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상은 시니피앙 이외의 측면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문제가 된다. 프로이트는 그런 의문에서 음성 치료 반응이나 죽음의 욕동[충동]같은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을 평생토록 계속했다. 이렇게 라캉의 말로 하면, 증상이 지닌 향락으로서의 측면이 부각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정신분석이 상당히 진행되어도, 사람이 자신의 증상을 놓으려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증상이 지닌 향락의 핵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증상의 메타포로서의 측면이 아니라, 향락으로서의 측면을 더 중시하는 논의가 생기게 됐다. 라캉 자신이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증상(symptôme)에서 생톰(sinthome)으로 그의 증상론을 전회시킨 것도 이런 이행에 상응한다. 또한 밀러는 약 30년에 걸친 자신의 강의에서, 이 이행을 다양한 형태로 가다듬어왔다. 예를 들어, 생톰을 증상과 판타슴의 혼합물이라고 하는 1986-87년의 강의 기장을 이루는 것(記章をなすもの)[각주:14]에 있어서의 재정의는, 메타포로서의 증상과 그 증상 속에서 판타슴을 통해 주체가 은밀하게 얻고 있는 향락 사이의 혼합물로서 라캉의 생톰 개념을 재파악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1999년의 강의 분석 치료에 있어서의 실재계의 경험[각주:15]에서는, 증상이 지닌 이 두 측면은 의미작용의 도래신체의 사건의 두 가지로 재파악됐다. 이 정리는 메타포에 의해 의미작용을 발생시키는 증상과, 신체의 수준에서의 만족을 담당하는 증상이라는, 증상이 지닌 두 가지 측면을 나눠서 파악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게다가 2011년의 단 하나뿐인 <일자>에서는, 신체의 사건으로서의 생톰이 우선 처음에 있으며, 이 신체의 사건을 기점으로서 의미론적인 증상을 전개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식으로 양자의 관계가 위치지어졌다. , 프로이트적인, 메타포적인 의미를 지닌 증상은 모두, 그 뿌리에 향락의 단 하나뿐인 <일자>”, 즉 신체의 사건을 갖고 있다고 간주됐다. 모든 주체가 의존’, ‘마약하에 있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이 고립된 향락이 주체 속에서 항상 반복되고, 주체가 스스로 떼어낼 수 없는 형태로 그 향락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대 라캉파의 논의에서는, 이제 증상의 의미를 해독하고, 그 의미를 환자에게 베푸는 것의 중요성은 떨어진다. 오히려 증상이 뛰어나게 신체에 관련되는 국면, 즉 순수한 향락의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에 분석가는 주목해야 한다고 간주된다. 다만, 그것은 시니피앙을 중시한 해석이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시니피앙은 아직도 라캉파의 실천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적인 증상의 해석은 시니피앙에 의해 의미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시니피앙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 이미 어떤 증상에 대해 다른 의미를 덧붙이고, 의미의 포화상태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증상이 지닌 의미를 깎아 없애고, 모든 주체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무의미의 시니피앙(요소 현상)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신체 수준에서의 향락을 파악하는 것이 현대 라캉파의 해석에 있어서 내깃돈으로 걸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의 기법은, 1964년에 라캉 자신이 해석이란 주체에 있어서의 무의미의 핵을 추려내는[끄집어내는 것이다”(S11, p.226)라고 말했듯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라캉 이론 속에서 배태됐던 것이다.

밀러는 이런 현대적 해석을 역방향의 해석(interprétation à l’envers)”이라고 부르고, 증상에 의미를 덧붙이는 순방향의 해석과는 구별한다.[각주:16] 이런 역방향의 해석이야말로 주체를 자신의 향락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현실계에 있어서의 신체의 사건을 취급할 수 있는 기법이다. 이 해석에 의해 꺼내지는 것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주체에 고유한 향락의 모드, 단 하나뿐인 <일자>”라고 불리는 고립된 향락의 모습이며, 다른 시니피앙 S2로부터 격리된 단 하나뿐인 시니피앙 S1으로서의 요소 현상(phénomène élémentaire)이다.[각주:17] 이리하여 주체는 스스로에게 고유한 향락의 모드와 잘 해가는 것(savoir y faire)”, 혹은 향락의 모드를 변경할 가능성으로 인도되는 것이다. 밀러가 말하듯이, 현대의 라캉파에게 증상을 읽는다는 것은 증상의 의미를 알아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상의 무의미를 읽는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각주:18]

츠이키도 소개하고 있듯이, 1970년대 라캉에 의한 생톰개념의 도입 이후, 라캉파는 증상의 의미론’(증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독해하는 것)으로부터 어용론[화용론]’(증상이 무엇에 도움이 되는지를 밝혀내는 것)으로의 변동shift”을 어떻게 이론화하는가에 전념했다. 그 결과, 위에서 서술한 다양한 논의가 산출됐던 것이다. 이 이론은 조이스 같은, 우리를 당혹으로 데려가는 전대미문의 에크리튀르를, 그의 생톰으로서 파악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로부터는, 창조성에 관한 새로운 논의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6. 남성의 식에서 여성의 식으로

지금까지 상징계, 정신병, 섹슈얼리티, 증상이라는 각각의 관점에서 현대 라캉파의 논의를 소개했다. 물론 이것은 망라적이라는 것에는 매우 거리가 먼 소묘 정도의 것이지만, 현대 라캉파의 대체적인 방향성은 전달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영역에서의 라캉파의 이론의 전회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까? 필자가 보기에, 이 일련의 움직임은, 라캉이 세미나 20앙코르(1972-73)를 전후로 제시한 성별화의 식性別化”[그림 4]에서의, 남성의 도식에서 여성의 도식으로의 이행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림 4: 성별화의 식


확인하자. 라캉의 성별화의 식은, 남성의 식과 여성의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식의 발명에 의해, 단일의 예외에 의해 보편을 구축하고 안정화시키는 기존의 고전적 라캉이론은 남성의 식 속에 거두어지게 됐다. 남성의 식이란, 하나의 예외를 이용함으로써 모두(tout)’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논리이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에서 제시한 원-아버지의 신화에서는, 어떤 원시 부족에서 막강한 힘을 가졌던 원-아버지가 모든 여성을 소유했다고 여겨진다. 이 원-아버지는 부족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 거세되지 않으며(), 다른 모든 남성에 대해 예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예외의 존재가 보편(‘모든 여성’, ‘모든 남성’)을 안정화시키는 것이다.[각주:19] 첨언하면, 아즈마 히로키가 존재론적, 우편적(1998)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른바 부정신학적인 라캉, 즉 단일한 결여=예외에 의해 상징 시스템 전체를 안정화시킨다는 라캉의 상(), 이 남성의 식으로 거의 수렴된다.

한편, 여성의 식은 그런 보편(‘모두’)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보편의 양화자量化子 가 부정되어 라고 기록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남성의 식에서의 패러다임이 원-아버지-신화라면, 여성의 식에서의 그것은 돈 후안(Don Juan)의 전설이다. 라캉은 세미나 10불안(1962-63)에서 이미 돈 후안이 여성의 꿈이라고 언급하고,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향락의 모습에 주목했다. 앙코르의 여성의 식의 논의에서 돈 후안이 중요해지는 것은, 그가 여성들을 한 명 한 명(une par une) 다루기”(S20, p.15) 때문이다. 돈 후안은, 모든 여성을 소유하는 원-아버지처럼 여성을 하나의 집합으로서 움켜쥐고 에워싸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여성을 항상 새로운 플러스 1로서 취급한다. 즉 그에게 여성이란 모두가 아니다(pas tout)”, 모두라는 보편(집합)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 논리에서는 이미 보편을 성립시키기 위한 예외가 불필요해진다.[각주:20]

 pdf  Anxiety: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Book X

정신분석가 마리 엘렌느 브루스에 따르면, 전중기 라캉에서 후기 라캉으로의 이행은, 보편을 가능케 하는 남성의 식으로부터, 더 이상 보편이 불가능해지는 여성의 식으로의 이행으로 파악된다.

 

후기 라캉을 읽으면, 라캉이 (정관사 le, la가 붙은) 보편적인 것을 (부정관사인) ‘un, une’으로 점차 대체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이라는 것(l’homme), 여성이라는 것(la femme)이 어떤 남성(un homme), 어떤 여성(une femme), 어떤 해결법, 어떤 증상, 어떤 이름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 이행은, 완전하고 조직화된 클래스의 보편성으로부터 부정성(不定性), 비완전성으로 향한다. ‘le, la’, 정해진 집합을 참조하는 것이, 집합에 있어서의 외부인 하나의 점의 존재를 요청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라캉은 이 점에 관해 논리학을 원용한다. ‘le, la’을 사용하는 것은, 집합의 기능에 대해 예외를 이루는 한 가지 점을 존재하게 만든다. 앙코르의 이른바 성별화의 식의 표의 좌측 부분을 여기에서 찾아낼 수 있다. 그 식은 남성적 기능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것의 귀결은 정신병은 더 이상 예외와의 관계에 있는 심적 조직화로서는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각주:21]

 

후기 라캉은, 정관사를 가능케 하는 예외와 보편의 논리(남성의 식)로부터, 더 이상 정관사나 보편이 성립하지 않는 논리(여성의 식)로 이행한다. 후자의 논리에 있어서는, 보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정관사에 의해, 하나씩 열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 글에서 개괄한 사항을 잘 설명해줄 것이다. , <아버지>에 대해서는, 대문자로 적을 수 있는 유일한 “<아버지의 이름>(le Nom-du-Père)”으로부터 복수의 아버지의 이름(noms-du-père)”로의 이행이. 향락과 증상에 대해서는, 결여를 기반으로 한 섹슈얼리티/증상으로부터, 개인 각각에 특이적인 향락의 모드/생톰으로의 이행으로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브루스는 보통 정신병에 대해서도, 예외의 논리에서 예외가 성립하지 않은 논리로의 이행으로서 파악했다.

 

자크-알랭 밀러가, 슈레버를 예로 들어 남다른 정신병이라고 부른 것을 거론해보자. 남다른 정신병은, 남다른 망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 망상은 어떤 시니피앙이 결여되어 있는 장소에 상상계를 갖고 치료를 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다. 이 경우, 주체는 스스로, 결여되어 있는 예외, 즉 결여되어 있는 명명하는 아버지라는 예외를 수육화하는 것에 헌신하고 있다. 이리하여 슈레버는 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여성이라는 것이 된다. 이 예외의 위치는, 우리가 남다른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응한다. Φx가 아닌 x가 한 가지 존재한다는 공리를 지탱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최초의 가설은, 보통 정신병은 이런 예외를 원리로 하는 방법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 정신병에 있어서는, 환자는 상징적 조직화에 결여되어 있는 예외의 기능을 스스로 수육화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때래서 보통 정신병에서의 보통이란, 예외적으로가 아니라, 공통의, 범용한이라는 의미이며, 그것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이라는 표현에 있어서와 같은 의미이다.

 

슈레버 같은 정신병자는, 예외의 위치를 스스로 떠맡는다. , 그들은 원-아버지와 일체화하는 것이다. 한편, 보통 정신병에 있어서는, 더 이상 이 예외는 기능하지 않는다. 기괴한 망상 체계를 만들어내는 남다른 정신병으로부터, 커다란 비정상으로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보통 정신병으로의 이행도 또한, 남성의 식에서 여성의 식으로의 이행과 관련지을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사해둔다면, 치바가 너무 움직이지 마라에서 지적하는 들뢰즈=가타리의 생성변화론의 레토릭의 양면성[二面性], 단일한 X로의 수렴으로서의 <만물제동의 익명성>”복수의 x, y, z 라는 <구별 있는 익명성>”[각주:22]의 두 극으로의 분화는, 이 라캉의 남성의 식과 여성의 식의 각각의 논리와 아주 비슷하지 않는가?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여성으로의 생성변화, 정관사가 붙은 여성, 즉 슈레버 같은 신의 여자라는 예외적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되는 것, 새로운 존재의 자세를 취하는 것”, “n개의 성이라는 형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현대 라캉파의 관점에서 다시금 후기 라캉 대 들뢰즈(=가타리)의 대결이라는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각주:23] 이것은 너무 움직이지 마라, 똑같이 남성의 식(부정신학 시스템)과 여성의 식(우편=오배송 시스템)을 대치한 존재론적, 우편적의 후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줄 것이다.

그나저나, 이 형식상의 기묘한 수렴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고이즈미 요시유키(小泉義之)[각주:24]가 평했듯이, 치바의 논의가 라캉 중심사관에 서 있기 때문일까? 지금, 속단은 삼가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이른바 프랑스 현대사상의 문맥에서 생각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필자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남성의 식과 여성의 식이 반드시 양자택일적이 아니라, 일종의 평행세계(parallel worlds)처럼 작동하는 세계이다. 신경증과 정신병의 감별 진단이 가능하다는 입장과, “사람은 모두 망상한다(정신병이다)”라는 입장이 양립하는 것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관계에서 파악됐듯이, 아버지의 쇠퇴는 더 못난 아버지의 회귀와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혹은 증상이 지니는 메타포로서의 의미와, 증상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라는 의의를 동시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이것들은 열린 물음으로서 있다.

 

 

 

  1. 프랑스의 라캉파는 여러 단체로 분열하고, 이 모든 것을 조감하듯이 논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을 넘어선다. 이 글에서 ‘현대 라캉파’라고 지칭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대의파(Ecole de la Cause freudienne), 특히 자크 알랭 밀레르와 그 주변 논자들의 논의이다. [본문으로]
  2. Miller, J-. A., L’Autre qui n’existe pas et ses comités d’éthique, La Cause freudienne, no 35, 7-20, 1997. [본문으로]
  3. 라캉의 인용에 대해서는, 각주가 번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에크리󰡕에 관해서는 E 기호 뒤에 Seuil판의 쪽수를 적는다. 강의록인 󰡔세미나󰡕에 관해서는 이미 간행된 권에 대해서는 S 기호 뒤에 권수와 Seuil판의 쪽수를 적는다. 그 이외의 텍스트에 대해서는 주에 표시한다. [본문으로]
  4. 斎藤環, 『メディアは存在しない󰡕, NTT出版, 2007年. [본문으로]
  5. Miller, J.-A., Lacan disait que les femmes étaient les meilleures psychanalystes. Et aussi les pires, Lacan Quotidien, no205, 2013. [본문으로]
  6. Miller, J.-A., Effet retour sur la psychose ordinaire, Quarto, no94-95, 42-47, 2009. [본문으로]
  7. 밀러에 따르면 이런 외부성의 특징은 라캉이 1958년에 이미 “삶의 감각이라는, 주체에게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 생기는 부조화”(E558)라고 부른 것에 대응한다고 한다. [본문으로]
  8. Svolos, T., ‘Ordinary Psychosis’, Psychoanalytical Notebook, n。19, 79-82, 2008. [본문으로]
  9. 감별진단에 관한 라캉파의 이론 변천은 다음의 논문에서 정리했다. 松本卓也, 「ラカン派の精神病硏究───「精神病の鑑別診断」から「普通精神病」へ」, 『思想󰡕, 2012년 8월호, 25-44頁. [본문으로]
  10. Miller, J.-A., L’Un-tout-seul. Cours de 2011(indédit). [본문으로]
  11. Jacques-Alain Miller: les prophéties de Lacan. Le point. fr, 18/08/2011. [본문으로]
  12. 千葉雅也, 󰡔動きすぎてはいけない—ジル・ドゥルーズと生成変化の哲学』, 河出書房新社, 2013年, 75-6頁. [본문으로]
  13. 앞의 책, 36頁. [본문으로]
  14. Miller, J.-A., Le sinthome, un mixte de symptôme et fantasme. La Cause freudiennie, no 39, 7-17, 1998. [본문으로]
  15. Miller, J.-A., Biologie lacanienne et événement de corps. La Cause freudienne, no 44, 7-59, 2000. [본문으로]
  16. Miller, J.-A,, L’interprétation à l’envers. La Cause freudienne, no 32, 7-14, 1996. [본문으로]
  17. 이런 다른 것으로부터 고립된 향락으로서의 “단 하나뿐인 <일자>”, 다른 것으로부터 떼어내진 시니피앙 S1의 모습은, 치바가 말하는 “비의미적 절단”과 비교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바로 인과성의 틈새이기 때문이다. 다만 치바가 들뢰즈로부터 끌어낸 세계관이 “전면적으로 인과적이지 않은, 도처에 절단이, 비의미적 절단이 달리고 있는 세계사·자연사의 철학”(278頁, 강조는 인용자)인 한에서, 각각의 주체에 있어서의 비의미적 절단을 하나라고 하는 라캉파와는 차이화되어야 한다. [본문으로]
  18. Miller, J.-A., Lire un symptôme. Mental, no 26, 49-58, 221. [본문으로]
  19. 이 논의에서는 세계에는 존재라는 단 하나의 영원불변에 정지한 일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플로티누스의 일자(토 헨) 개념이 참조되고 있다. [본문으로]
  20. 일찍이 프로이트는, 리비도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남성적 리비도라고 말했다. 즉, 팔루스(페니스)에 의해 향락을 얻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또한 페니스 선망을 통해 남성의 성기관과 관련됨으로써 향락을 얻는다고 프로이트는 생각했던 것이다. 라캉은 성별화의 식에 의해 이 프로이트의 생각을 갱신했다. 즉, 남성은 평소에는 팔루스 향락밖에 얻을 수 없으나, 여성은 팔루스의 향락(페니스 선망)뿐 아니라, 팔루스 향락이 아닌 ‘<다른 것>의 향락’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본문으로]
  21. Brousse, M.-H., La psychose ordinaire à la lumière de la théorie lacanienne du discours, Quarto, no 94-95, 10-15, 2009. [본문으로]
  22. 千葉雅也, 前掲書, 六七頁. [본문으로]
  23. 그 단서는 다음의 논고에서 제시됐다. 松本卓也, 「人はみな妄想する──ガタリと後期ラカンについてのエチュ—ド」, 󰡔現代思想󰡕, 2013년 6월호, 113-127頁. [본문으로]
  24. 小泉義之, 「書評 『動きすぎてはいけない󰡕」, 󰡔文藝󰡕, 2013년 겨울호, 河出書房新社, 380頁. [본문으로]
  1. 초원 2018.05.17 12:33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순식간에 읽고 한번 더 보게 되는군요.
    관련 글이 있다면 좀더 읽고 싶습니다.
    외국어 능력이 있어서 자유롭게 찾아보고 싶지만
    ...
    치바의 책도 찾아봐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 Favicon of https://multitude.co.kr BlogIcon 상겔스 상겔스 2018.05.18 01:35 신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쓴이의 또 다른 단행본이 나온 것 같은데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치바의 들뢰즈에 관한 책은 강추드립니다.



Multitude/Solitude

: 마키아벨리를 둘러싼 네그리, 포콕, 알튀세르

우지 켄다(王寺賢太, 사회사상사·프랑스문학)

현대사상, 20137월 특집호, 129-143頁(각주는 생략했다)



국가를 세우려면 혼자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

공산주의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알튀세르

 

시대착오적인 사상사가 : 구성적 권력vs 마키아벨리적 모멘트

구성적 권력 : 근대성의 대안들에 관한 논고(Le pouvoir constituant : Essai sur les alternatives de la modernité)(1992)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뿌리 깊게 시대착오적인 사상가이다. 소련 붕괴의 이듬해, 역사의 종언이 운운되는 포스트모던적 상황의 한복판에서, 마키아벨리에서 레닌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정치사상사를 다시 말하고, 그것을 결코 끝나지 않는 혁명 사상의 계보로 제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지하듯이, 네그리는 이 책에서 구성된 권력에 대해 구성하는 권력편에 서서, 근대사에는 구성하는 권력과 그 주체인 다중이 편재한다고 주장한다. 네그리가 혁명을 어쩔 수 없이 수렴収束시키는 인과의 계열에 역공을 가하면서, 되풀이하여 혁명의 사전(事前)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구성적 권력의 사상사가에게 특유한 시대착오가 있다. 종종 과감한 단정이나 무리가 추론에 의해 이뤄지는 이 시대착오를 파악하고, 네그리의 작업이 지닌 결점을 들춰내는 일은 쉽다. 다만 그 때에는 역사가가 사후로부터, 객관적으로 역사를 말하려고 할수록 역사, 혹은 시간의 어떤 차원이 간과된다는 것은 등한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그리의 시대착오는 바로 그런 차원, 인간 주체가 그 안에서 존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역사시간의 창조적인 차원을 탈환하기 위한 방법이다. 1990년대, 어디까지나 시대착오적이었던 구성적 권력의 사상사가가, 2000년대에 반-전지구화 운동의 사상가로 일약 시대의 인물이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구성적 권력맑스를 넘어선 맑스(1978)와 스피노자론인 야생의 아노말리(1981)를 이어받아 네그리 개인의 작업의 집대성을 이루며, 2000년대에 연달아 간행된 마이클 하트와의 공저 제국3부작의 현대정치경제론을 예고하는 전회점에 위치하고 있다. 거기서 중심에 놓인 구성적 권력이나 다중이라는 개념이 스피노자에 관한 정치적 독해로부터 도출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구성적 권력에서 제국이후의 연결을 나타내는 것은 네그리/하트의 가장 논쟁적인 개념인 제국이며, 다중에서 <제국>의 정치적 재편성의 도식을 제공하는 일자소수자다수자로 구성된 폴리비오스적 혼합정체론이며, 공통체에서 제창되는 소유 없는 공화국공화국개념이다. 왜냐하면 구성적 권력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발단하고, 마키아벨리를 거쳐 근대 초기의 대서양 양안에 계승된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근대혁명사상의 계보로 고쳐 읽은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때 네그리에게 최대의 참조항은 마키아벨리적 모멘트(1976)J. G. A. 포콕이다. 근대 초기의 유럽과 미국에서, 공공선의 실현에 헌신하는 시민의 멸사봉공의 군사적·정치적 에토스 에서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보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추적하며, 공화국의 통일을 방어하는 시민의 ,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공화국의 통일을 위협하는 운명사이의 대립도식으로부터 역사주의의 생성을 묘사해낸 정치사상사가이다. 여기서 역사주의는 역사의 운동에 인간의 활동을 관여시키고, 역사 자체를 새로운 가치나 규범을 산출하는 것으로 그려내는 시도를 가리킨다.

실제로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에서, 포콕을 좇아, 16세기 피렌체의 마키아벨리로부터 청교도혁명기 잉글랜드의 해링턴을 거쳐, 미국독립혁명의 이데올로그들까지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따라간 후, 그것에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 관한 사상사적 분석을 접목하고 있다. 포콕에 의한 고전적 공화주의 재고가 자연법론과 계약론의 계보를 중시하는 서구정치사상사에서 법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이의제기인 한, 이미 스피노자론에서 -법제주의를 선명하게 했던 네그리가 마키아벨리적 모멘트에서 큰 자극을 받은 것에 놀랄 필요는 없다. 원래 17세기 네덜란드의 공화주의자 스피노자의 정치적 구성 la constitution”의 논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론에서 헌법제정권력 le pouvoir constituant”을 법학적인 틀로부터 뽑아내어, 정치체를 구성하는 다중의 힘으로서 위치시킨 후에, 네그리는 포콕에 의거하면서, 구성적 권력을 근대혁명사상의 계보에 부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오히려 포콕과 네그리의 차이일 것이다. 그 차이는 미국독립선언혁명으로 책을 닫는 마키아벨리적 모멘트대서양적인 전망과 러시아 혁명을 시야에 넣은 구성적 권력대륙적인 전망을 대비하는 것만으로도 분명해진다. 그 차이는 아렌트의 혁명론이 말하는 정치혁명사회혁명의 계보의 차이이기도 하다. 원래 운명에 대한 의 되풀이되는 패배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역사주의에 근거한 보수주의를 표방하게 되는 포콕과 의 에토스를 본성상 끝나지 않는 혁명의 잠재력에 결부시키는 네그리는 정치적 입장이 전적으로 다르다. 이하에서는 구성적 권력에서 전개되는 마키아벨리론에 초점을 맞추서 네그리가 얼마나 포콕을 뒤따르면서도 포콕과 갈라서는가를 밝히고 싶다. 이 두 사람에게 마키아벨리는 각각의 책 전체의 테마를 단숨에 제시하는 사상가이며, 그곳에서는 모두 시간과의 관계에서 의 정치학이 문제가 되는 이상, 네그리의 근대혁명 사상사의 특이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것보다 더 나은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우리는 또 한 명, 네그리의 시대착오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어떤 철학자를 언급하게 될 것이다. 1990, 네그리가 책임 편집자 중 한 명이던 잡지 전미래의 창간호에 게재된 마키아벨리의 고독 La solitude de Machiavel의 저자 루이 알튀세르이다. 아이러니한 공화주의의 역사가와, 고독 속에서 죽음의 침대에 있었던 맑스주의 철학자 사이에서, 바닥없이 낙관주의적으로도 비치는 다중 la multitude’의 사상가가 스스로 껴안으려고 한 고독을 분명히 밝히는 것 이것이야말로 본고의 목표이다.

 

변동의 정치학 : 정치이론가의 탄생

덕과 운명 : 마키아벨리적 패러다임이라는 제목의 구성적 권력의 마키아벨리론의 중심에는 군주론로마사논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놓여 있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마키아벨리 해석사에서의 큰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대립했다. 한편으로, “이탈리아적 전통을 이어받은 자는 마키아벨리즘책으로 유명한 군주론을 특권시하고, 이 책에서 획득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개념이 마키아벨리의 전체 저작을 지배한다고 이해했다. 이러한 이탈리아적 전통에는 데 산크티스(Francesco de Sanctis)부터 그람시를 거쳐 트론티까지 포함되어 있지만, 그 끄트머리에는 그람시를 토대로 하면서 군주론의 저작을 국민국가시작의 사상가로 위치시킨 알튀세르도 연이어 있다. 다른 한편,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소재로 공화국론을 전개하는 로마사논고를 중시한 영미의 연구자들은 이 책의 공화주의를 마키아멜리의 중심적 사상으로 평가하면서, 군주론을 이론적으로 애매한 상황적 산물로 간주한다. 이런 연구자들 중 최대 거물이 포콕이다. 즉 네그리에게 군주론로마사 논고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알튀세르와 포콕 사이에서 마키아벨리에 관해 생각한다는 것에 다름없으며, 그 반대도 또한 참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네그리가 갑작스럽게 이 커다란 문제에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일단 군주론이전,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 시절까지로 소급해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이론적 경력을 하나하나 추적해간다는 점이다. 게다가 네그리는 로마사 논고이후, 피렌체사를 필두로 하는 후기의 저작에 대해서도 논급하기 때문에, 이 마키아벨리론은 마치 피렌체의 정치사상가에 대한 응축된 이론적 전기(biography)의 양상을 띤다. 알튀세르에게서도 포콕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에 대한 이런 관심을 통해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의 사상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처럼 우뚝 일어서고 부서지며, 재차 더욱 강고하게 일어서려고 하는 모습을 그려내려고 하는 것이다.

 

잰 걸음의 태양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표면을 이미 1494번이나 돌았네. / 그 이후, 서로 다투던 이탈리아는 프랑스인들에게 문을 열었고, 야만인들에게 짓밟히는 고통을 겪었다네.

 

마키아벨리의 10년사(1504)에서 인용한 이 문장을 네그리는 자신의 마키아벨리론의 첫머리에 둔다. 1494년 프랑스군 침공에 직면해 용병으로 맞선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맥없이 패배했다는 것을 전하는 구절이다. 그것을 계기로 시작된 11차에 걸친 이탈리아 전쟁은 유럽에 프랑스 왕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대립을 중심축으로 한 세력균형의 체계를 산출하고, 이탈리아의 공화국들로부터 알프스 북부에서 할거[거점을 두고 활동]한 군주정 국가로 결정적으로 패권을 이행시켰다. 이 사건이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과 신대륙발견(1492)과 더불어, 근대 유럽의 기점으로 지목된 것도 그 때문이다. 포콕은 이미,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지배가 일단 붕괴한 1494년부터 근대 공화주의 사상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그리에게 이 날짜는 단순히 마키아벨리를 둘러싼 정치상황의 변화의 지표가 아니라 근대의 가장 근원적인 소여가 개시된 날짜이다. 그 주어진 이름이 바로 변동[변전] mutatio’이다. 10년사의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의 몰락 이후에 변동의 시작을 돌이켜봤듯이, 네그리는 근대의 끝에서부터 근대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거기에서 변동을 찾아내고 있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결코 변동을 소여로서 찾아낸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미 외교관 시절의 제언에서, 그는 무력양식(良識)’의 종합에 정치적 변동을 관장하는 활동적 원리가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관찰의 대상이든 활동의 대상이든, 거기서는 변동이 주체에 대립하는 객체에 머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더 중요한 한 걸음은, 주객의 대립 이전의 차원에서 변동을 파악하고, 주체의 활동을 변동과 일치시키고, ‘변동그 자체를 통째로 주체화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네그리가 자연주의적 지평으로부터 역사적 구조로라고 부르는 이 이행과 더불어, “변동은 인간이 그 내부에서 활동하고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된 현실을 돌파해서는 새로운 현실을 다시 구성하는 박동에 의해 획기화된 역동적인 과정이 된다. 피렌체에서, 혹은 신성 로마 제국이나 프랑스 왕국의 궁정에서, 역사적 회고를 감안하면서 동시대의 정치적 현실을 분석하고, 그 장래를 점쳤을 때, 마키아벨리는 이미 변동그 자체, ‘시간그 자체에 구성하는 권력이 내재한다는 입장을 붙잡으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마키아벨리가 이 역사의 역동성을 제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긴 과정을 경과해야 했으며, ‘생명의 철학같은 역사주의로 마키아벨리의 정치가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는 긴장의 누적이며, 폭발의 기대이며, 기성 질서와 균형의 파탄으로 향하는 잠재력을 품고 있는 중층적 결정의 힘이 존재자 하에서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그런 중층적 결정의 힘 = 위로부터의 결정의 힘 la surdétermination”을 체현하는 군주의 정치기술을, 1502년부터 1504년에 걸쳐 체류한 체사레 보르자의 궁정에서 목격했다. 시간 속에서 비롯되고 변동하는 상황 속에서 호기(好機)를 붙잡고, 시간을 지배하기 위한 그 기술 , ‘운명에 맞서는 의 관찰과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또한, 관습에 의한 것도 계약에 의한 것도 아니라 활동 그 자체에 입각하여 자기를 유지하는 새로운 주권의 개념을 품게 된다.

그러나 네그리가 마키아벨리에게 한층 더 중요한 전기(轉機)라고 생각하는 것은 1503년의 체사레 보르자의 몰락이었다. 그의 아버지교황 알렉상드르 6세 사후, 우유부단을 드러내고, 순식간에 상황이 그를 앞질러간 자신의 영웅의 모습과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있어서의 의지주체적 기투의 중요성을 포착하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는 역사적 시간을 내면화하고, 인간적 시간에 통합하고, 공공연하게 드러난 잠재력을 특이한 것으로 하는 것이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관찰자이기를 그만두고, 이탈리아의 종속상태를 타개하는 길을 물색한다. 정치이론가로서든, 스스로 활동의 주체로서, 체사레 보르자에게서 본 잠재력을 제 것으로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권력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구성적 주체로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탐구는 1512, 스페인군의 이탈리아 침공에 뒤이어 피렌체의 공화적 정부가 붕괴하고 메디치가가 권력에 복귀하는 것과 더불어 훨씬 절박해졌다. 마키아벨리 자신은 궁정에서 쫓겨나고, 투옥의 쓰라림과 조우한 이 위기적 상황 속에서 씨름했는데, 우선 공화국의 책』 ― 『로마사 논고』 ― 을 썼고, 이어서 투옥 이후, 공화국의 책을 중단하고 쓰게 된 군주론이었다, 이렇게 네그리는 단정한다. 이리하여 군주론객관적인 한계와 주관적인 절망의 특이성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지어진다. “마키아벨리의 고독이 우리의 시야에 부상하는 것이다.

 

구성적 원리의 고독 : 군주론

군주론을 논하는 데 있어서 네그리는 맨 처음에,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la principauté”가 폴리비오스 식의 정체 분류론에서 말하는 군주정귀족정도 아니고, 따라서 공화국의 책이 다루는 공화국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새로운 군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고찰은 변동을 위로부터 결정하는 역사적 주체”, 혹은 변동을 위로부터 결정하는 원리에 바쳐지고 있다. 네그리에게 군주론구성적 원리의 책이며, 정치체를 정치체로서 구성하는 기초조건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론적책인 것이다.

하기야 이 해석 자체가 반드시 네그리의 독자적인 것만은 아닐 터이다. ‘새로운 군주에 대한 논의를, 활동 그 자체에 의해 정당성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정치적 혁신자에 대한 고찰로 위치시키는 포콕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국민적 국가의 시작을 사고한 책으로 위치시키는 알튀세르도, 그다지 다른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렌트도 서양 근대에서 최초로 국가의 창설을 사고한 인물로 마키아벨리를 위치시켰다. 그러나 이 구성적 원리의 급진성을 평가하면서 네그리가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군주론에 내포된 아포리아이며, 실천적인 불능(不能)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불능을 지적할 때에, 네그리가 참조를 요구하는 것이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의 고독이다.

 

이 원리가 지닌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존재론적 깊이를 부정하려고 한다든가, 그 고독과 기투의 반전이 얼마나 강력한 삶의 원천을 나타내는가를 잊자는 것이 아니다[주는 여기에 붙는다]. 그러나 존재론적인 혁신은 귀결의 공허 위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나 그 때문에 절망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실제, 마키아벨리의 구성적 원리는 여기에서 전복적이며, 전복적인 로 머문다. 그의 사고의 운동은 적대의 운동이지 경향의 운동이 아니며, 위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해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혹은 그 해결을 찾아내려고 해도 미리 그것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튀세르에게서 마키아벨리의 고독과 기투의 반전은, 혹은 (훗날 출판된 마키아벨리와 우리에 입각해 말한다면) 실천적·이론적인 불능역능의 교착은, 그가 자기 스스로는 해결 불가능한 물음을 제기한 점에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달성[성취]된 사실로서의 국가의 정당성을 묻는 근대의 모든 정치철학자들과 갈라서며, ‘고독속에서, “성취[달성]되어야 할 사실로서의 국가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인 조건을 사고했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의 시작의 불가능성과 더불어, 시작에 있어서 작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효(実効)적인 힘을 폭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말투는 충분히 알고 있기에, 네그리는 이렇게 매우 알튀세르적인 반전에 그치려고 하지 않는다. ‘역능 = 잠재력 la puissance’다중 la multitude’의 사상가 네그리에게 알튀세르의 불능 l’impuissance’고독 la solitude’은 너무도 관념적으로 비쳤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 주의해야 할 것은, 그때, 네그리의 유물론이 시간과의 관계에서 정의된다는 것이다. 군주론에는 전복의 운동만 있으며 경향의 운동이 결여되어 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위기를 인식하면서 해결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구성적 원리가 시간의 울타리 바깥에 놓여 있으며, 마키아벨리의 고독이 무엇보다도 역사적 과정으로부터의 고립에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알튀세르와 네그리의 관계와 관련된 한, 사태는 조금 복잡하다. ‘역능불능, 혹은 고독다중, 구성적 권력에 있어서도 또한, 서로를 뒷받침하면서, 끊임없이 반전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고독은,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네그리에게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그리는 마키아벨리론의 말미에서 다시 알튀세르를 호출하고, 마키아벨리의 고독에 성원을 보내게 되는데, 그 마지막 반전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제 잠시 동안 네그리의 논의를 추적해야 한다.

일단 군주론의 한계를 시간으로부터의 고립, 역사적 과정으로부터의 고립에 견줘본 뒤에, 네그리는 이 책의 존재론적 깊이와 실천적인 불능의 교착을 더욱 파고들어 검토한다. 그때 네그리가 우선 주의하는 것은 구성적 원리와 군사력의 연결이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새로운 군주의 국가는 무엇보다도 에 의해 생기는 것이며, 은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구성적 원리무장한 덕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마키아벨리에게서의 군사력 문제에 대해서 아렌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네그리는 그것을 기피해야 할 정치적 폭력의 행사 문제로 파악하지는 않았다. 그 배경에는, 시민은 스스로 무기를 취해 공화국을 방어하는 전사여야 한다는 주장에 고전적 공화주의의 한 가지 핵심을 인정한 포콕의 고찰이 똬리를 틀고 있음이 틀림없다. 실제로 포콕을 따라 말하면, 유럽의 군주정 국가가 국왕 상비군을 정비했던 시대에 시민의 민병조직에서 공화국의 자유의 요체를 본 마키아벨리의 관점으로, 근대주권국가에 의한 정당성 있는 폭력 행사의 독점”(베버)에 근본적인 이의를 들이는 현대적인 사정거리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그리는 이 구성적 원리와 군사력의 연결에서 마키아벨리의 한계를 간파한다. 정말로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에게서도 군사력의 문제는 단순한 폭력행사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군사력은 정치체를 조직화하고, 그 구성원의 을 함양하므로 평상시에도 국가의 구성의 역동성을 체현하기 때문이다.새로운 군주에게 이 절대적인 원리인 이상, 군사력이 절대화된 것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의 점에 있다. 무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군주를 위한 것인가, 인민을 위한 것인가?”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는 이 가장 긴요한 물음에 답하려고 하지 않는다. 거기에 네그리는 민주정의 선택 그 자체의 포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네그리는 더 나아가 군주론의 인식론적 한계도 지적한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무장하고 덕이 높은 군주에게 구성적 원리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그 군주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거기에서는 분명히, 힘이 인식을 낳고, 인식이 힘을 낳는다는 직관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새로운 군주는 단순히 국가의 저자일 뿐 아니라 논리와 언어의, 혹은 윤리와 법률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다만, 체사레 보르자라고 생각되는 정치적 영웅을 모델로, 군주가 따라야 할 윤리적 규범을 역설하는 데 머문다. 그리고 이 윤리적 호소는 구성적 원리의 존재론적 차원 파고 들어갈수록 강조되고 공회전하게 되는 것이다.

강렬한 군사주의와 극단적인 주관주의 네그리가 군주론의 한계로 보고 있는 것은 네그리 자신도 포함한 70년대의 좌익운동의 조류들을 생각나게도 하는 그런 전복으로의 과격한 경도이다. 구성적 원리의 운동은, 흡사 체사레 보르자가 순식간에 몰락했듯이, 끊임없이 새로운 장애에 부딪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 장애의 유래를 물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의 사고의 운동,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려고 더 한층 군사력과 주관성에 박차를 걸고, “전방으로의 도주를 결행한다.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 하에서 실행되는 작전의 절대성 외에 기초를 갖지 않는 이 [구성적] 원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구성적 권력이란 모든 한계의 돌파이며, 결코 편히 쉬지 않는 의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네그리는 이 구성적 원리전방으로의 도주에 불모의 과격주의의 귀결을 보고 그것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전방으로의 도주에서 군주론의 중심적인 주제를 간파한다. ‘구성적 원리의 비극이라고도, ‘덕의 비극이라고도, ‘정치적인 것의 비극이라고도 불리는 주제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비극은 필연적이다.”구성적 원리가 자신의 활동에 의해,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하는 이상, 그 활동 자체는 창조되어야 할 가치의 직전에, 진위와 선악의 저편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에 그 활동은 항상 사후의 관점에서 판가름될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성적 원리는 항상 우연적인 상황에서 사물의 실효적인 원리”(마키아벨리)에 직면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 원리의 활동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활동 그 자체를 배반하고, 되풀이되는 활동에 대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그리더러 말하게 하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가, 다양한 상황을 열거하고, 지칠 줄 모르게 권모술수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시도하면서, 항상 뜻대로는 안 되는 결과의 배신에 우롱당할 수밖에 없는, 이런 구성적 원리의 비극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네그리의 비극에 대한 고찰은, 틀림없이 마키아벨리적 모멘트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포콕은 이미, 군주론의 주제가, 부단한 행위의 연속에 의해 자기 정통화를 꾀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닌 정치적 혁신자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행위가 항상 결과의 타율 행위의 결과가 바로 그 행위의 의도를 배반한다는 것 에 의해 아이러니컬하게 배반당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님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포콕에게 있어서 거기에, ‘운명을 앞에 둔 의 불행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 불행의 인식이야말로 정치질서의 정통화는 단기적인 혁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지속 속에서 관용에 의해 도모되는 것에 다름없다고 하는, 포콕의 역사주의적이고 보수주의적인 입장의 배경에 똬리를 틀고 있다. 아무래도 위대한 역사가에 어울리는 사후의 사상이다.

포콕과 더불어 구성적 원리의 위기를 눈여겨보면서, 네그리는 이 역사가의 비관주의를 단호하게 물리치려고 한다. 정말이지, 군주론의 말미에서 이나 자유의지에 의한 운명의 지배의 가능성이 역설되고, 도래할 새로운 군주에 이탈리아 재건의 꿈이 맡겨져 있다는 것을 보고, 네그리는 거기에서 마키아벨리의 막다른 골목을 볼 것이다. 하지만 그 비판은 을 단념하고, ‘구성적 원리를 포기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네그리에게 있어서, 군주론에서는 구성적 원리절대성이 철저하게 추구되지 않고 끝나는 것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군사력이나 주관의 절대화 등에는 전혀 없다. 그와 반대로, 절대화가 불철저했다는 것, 그리고 운명에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구성적 원리가 시간의 울타리 바깥에 놓여 있다는 것이야말로 문제이다. 이리하여 군주론에서 로마사 논고로의 행적이, ‘구성적 원리의 심화의 과정으로서 독해된다. 마키아벨리는 고독의 사상가로부터 다중의 사상가로, 그리고 스피노자보다 훨씬 선구적으로 절대적 통치로서의 민주정의 사상가로 변모하는 것이다.

 

다중의 분리로부터 민주정의 구성으로 : 로마사논고

다만 네그리의 군주론로마사논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단순한 직선적 도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네그리에게서 군주론의 사정거리는, 로마사논고와의 상호관계에 놓여서 처음으로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로마사논고의 사정거리도, 군주론이 가져온 질적인 비약없이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콕은 로마사논고에서의 로마를 여러 공화국들 중의 새로운 군주에 빗댔다. 네그리는 그 비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1512년부터 1513년에 쓴 군주론공화국의 책, 군주론이전에 기획되고, 일단 중단된 후에 1515년부터 1517년에 완성한 로마사논고의 생성과정 속에 다시 놓는 것이다.

당장 네그리는 로마사에서 소재를 취하는 로마사논고의 정치적 고찰이 고대를 모델로 하는 온갖 사고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의 서론에서 얘기되는 고대인의 범례는 인간 본성이나 정념에 대한 보편적인 사정거리를 가진 고찰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며, 마키아벨리는 이 정념론을 매개로, 역사 속에 주체를 우뚝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마사논고에서는, 경험론적인 동시에 규범적인 군주론의 인식론적 한계가 처음부터 돌파되는 것이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것은 로마사논고1편에서 제시되는 마키아벨리의 정체론이, 폴리비오스적인 도식으로부터 이탈한다는 지적이다. 정말이지, 거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분류에 기초하여, 군주정에서 폭적, 폭정에서 귀족정과 과두정, 나아가 민주정과 무정부상태로의 순환이 얘기되고 있다. 또한 그 정체의 부패의 순환에 맞서는 최선의 정체로서, 로마공화국의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혼합정체의 우위조차 역설될 것이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렇게 계속한다.

 

그러나 [혼합정체의 분석에 있어서] 민주정 원리의 도입은 전적으로 범상치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바로 혁명이다. 왜냐하면 그 헌정은 혼합적인 한에서, 가장 완성된 공화국을 형성했다. 이 완성에 이른 것은 인민과 원로원의 분열 la désunion에 의해서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열로부터 소요로 가득 찬 공화국이 생기고, 소요로부터 공화국에서의 자유를 방어하는 좋은 질서가 생긴다. 이리하여 로마사논고의 고명한 테제가 민주정의 원리의 도입과 결부되는 것이다. 다만 그때, 일반적으로는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균형에 기초한 헌정론의 틀을 돌파할 때까지 극화(劇化)시킨다. 그 결과, ‘la constitution’은 이제 헌정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구성의 문제로서 논해진다.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가 그 돌파를 수행하는 것이, 로마사논고117·18장이었다. “부패한 인민이 자유롭게 되었을 때에는, 자유를 계속 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역설한 뒤, 또한 부패한 도시국가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정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보존할 수 있는가, 또한 자유로운 정체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에는 그것을 도입할 수 있는가라고 마키아벨리가 묻는 대목이다. 네그리는 거기에서, 폴리비오스적인 순환사관, 정체의 부패아 자유의 상실을 필연으로 보는 역사가의 비관주의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혐오를 읽어낸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공화국의 책을 중단하고, 군주론에 씨름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군주론은 이리하여 폴리비오스적인 비관주의를 토대로 하여 그것을 넘어서고, ‘부패와 자유의 상실을 필연적인 것으로 하는 순환사관을 거부하는 책으로서 재파악된다. 그때 동시에, ‘시간의 절단군주에 의한 위로부터의 결정이라는 군주론의 주제가, 역사 속의 주체의 활동의 계기를 강조하고, 그 주체의 구성 그 자체에 정치적 활동의 중심적 과제를 보는 입장과 결부되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군주론구성적 원리는 인민과 원로원 사이에서 발견된 분열을 극화하고,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균형론의 틀로부터 다수자=다중을 분리하여, ‘인민의 창설을 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몰랐던 구성적 원리가 인민이라는 신체를 획득하고, 민주정을 창조하기 위한 구성적 권력으로서 재정의된다. 그것과 더불어 구성적 권력의 주체는 인민 그 자체, 혹은 인민을 구성하려고 하는 다중그 자체가 된다. ‘군주는 이 구성의 원리=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사논고1편에 민주정으로의 지향을 확인한 후, 네그리는 2편의 을 둘러싼 고찰에 대해, 거기에서는 다중이야말로 의 집단적 주체로서 위치지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제 은 더 이상 단순히 운명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끊임없이 대치되는 장애를, ‘운명에 기대면서 극복하는 운동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덕은 산 노동이며, 생명에 대립하여 견고한 것으로 된 전통이나 권력을 조금씩 파괴할 수 있다.”, 혹은 구성적 권력다중이라는 집단적 주체와 더불어, 역사의 과정을 통해 현실화하는 경향의 운동, 혹은 자기 결정을 요구하는 투쟁이 된다. 여기에는 네그리에 의한 고전적 공화주의의 급진화가, 맑스를 넘어선 맑스의 도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혼합정체에 기초한 공화국의 통치체제가, 교환가치로 환원된 죽은 노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상품의 생산과 유통의 사이클에 비유되며, ‘다중이 영위하는 공동의 삶 그 자체가, 삶의 재생산을 자본의 재생산과정으로부터 점차 분리시키는 산 노동고유의 생산 사이클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구성적 권력, 민주정구성, 로마사논고3편의 과제로서 부상한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과제는, “르네상스의 개혁을 목표로 하는, 어디까지나 근대적인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유를 가져다준 르네상스에 편승하면서, 특히 = 운명 la foritune’의 축적이 가져다준 나쁜 귀결에 맞서, ‘자유의 원리로 회귀하면서, ‘의 주체의 구성울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때, 네그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군사의 조직화를 통한 다중의 집단적 주체로서의 구성이다. 이제 무장한 덕은 공화국 내부의 조직화와 의 함양이라는 문제계에 명확하게 결부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네그리는 이미 민주정은 강하게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마키아벨리의 명제를 거론하면서, 이 민주정에서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을 갖고서 조국의 방어에 종사하는 인민 그 자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때, 인민의 구성 요건, 민주정적인 자유의 구성요건으로 간주되는 것이 평등이다. “다중이 부패하지 않는 도시국가에서는 모든 것을 기능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평등이 지배하는 도시국가에서는 군주국을 만들 수는 없으며, 평등이 지배하지 않는 곳에서는 공화국을 만들 수 없다.” 네그리에게 있어서는 이 고찰이야말로, 마키아벨리를 민주정의 예언자로 위치시키는 것을 허용한 것이었다.

그 선행하는 논의를 계승하면서,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한 가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로마사논고3편에서의 마키아벨리의 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이후의 공화주의의 판에 박힌 정형화로부터 분리되고, ‘의 축적의 해악에 맞서 평등을 유지하고, 시민의 을 함양하고, 민주적인 공화국의 구성으로 향하는 정치=경제학의 효시로 위치지어진다. 네그리에게 훨씬 중요한 것은, 가난의 정치=경제학이, 마키아벨리의 군사적 고찰을 정치적인 정념론에 접속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가난의 옹호는 공화국에서의 군사력 유지의 요구에 뿌리를 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가난이 가져다주는 은 자유를 요구하는 정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네그리는 정념론에 정치적 구성에 대한 고찰의 요체를 간파했던 자신의 스피노자론과 평행하여, 정념의 정치에 대한 고찰에 마키아벨리의 구성적 권력론의 정점을 찾아낸다. 거기서 마키아벨리는 정념을 억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념을 현실의 구축, 새로운 현실의 구축을 향해 해방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렇게 해방된 정념은 공화국 속에 소요를 산출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념은 욕망사랑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 끊임없이 새로운 현실을 구성할 수 있다. 정념적 주체인 다중, 그 자체 유동적이고 시간적인 존재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타성[관성]이나 객관성과는 무관하게, 공화국을 위협하는 부패와 자유의 상실에, 부단한 재창설, 부단한 개혁을 갖고 맞설 수도 있다. ‘의 주체를 집단적인 것으로 하고, 그 집단적 주체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념적인 양상에 있어서 파악함으로써, 마키아벨리는 시간의 주체화를, 즉 민주적인 자기 통치의 과정으로서의 역사적 과정의 절대화를 철저하게 추진해나간다. 네그리에 따르면, 거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로마사논고117~18장에서 환기된 질적 비약의 도달점인 것이다.

위와 같은 분석을, 또 다시 포콕과 맞댈 수 있을 것이다. 포콕도 로마사논고순환을 피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완전히 균형을 이룬 정체를 어떻게 수립하는가라는 폴리비오스적인 문제설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지적한 뒤, 마키아벨리가 새로운 군주를 포함한 일체의 초월적인 차원의 개입 없이, 단지 우연적인 과정을 통해 정치질서가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논했기 때문이다. 포콕에게서는, 그런 인식이야말로 군주론이상으로 파괴적인 로마사논고의 핵심에 있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포콕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제국적 확대에 의해 일정한 기간 동안 자기를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유를 상실하게 된 로마공화국의 역사의 변천을, 그 특이한 헌정의 ()균형에 기초한 것으로서 분석하는 데 있으며, 원로원과 인민 사이의 분열